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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이민)생활 40년

광야생활의 출발 #2(하와이 도착 이민입국수속)

by Diaspora(복수국적자) 2023. 6. 29.

  드디어 10여시간의 장시간 비행끝에 비행기는 하와이 호놀룰루 공항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영어도 잘 모르고 라고 쓰고 아주 모른다라고 읽는다. 긴장된 가운데 그나마 눈치로 싸인판을 보면서 이민자의 입국수속을 하는 대열에 줄을 서고 입국심사관이 무어라고 물어보면 묻는것은 못알아 들어도 내가 할말은 해야겠기에 영어 문장 하나는 완벽(?)하게 외워가지고 뇌리속에 담아놓았다. "I can't speak english very well." 아~그런데 이렇게 유창하게 외워놓고 있는 유일한 한 문장이 자충수가 될줄이야...ㅎㅎㅎ 
심사관: "*&^%$#@!$%^&?(분명 영어로 물어보는데 내귀에는 이렇게 들리던 말던 나는 용감하게)
나       : "I can't speak englis very well." 
심사관: 아니,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놈이 못하는척 하는것 아냐?... 
 
  좌충우돌 하면서 입국심사를 하는데 당시에 우리는 이민비자 이기때문에 여권에다가 영주권 번호까지 적어서 입국도장을 꽝 찍어줄때까지 나는 정신없이 머리속에서 다음 비행기스케줄 때문에 머리가 빙빙돌아 가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다음 행선지인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타야하는데 도쿄에서 딜레이가 되어 5시간 가까이 연착하는 바람에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는 이미 바이~바이 한후였다. 나는 손짓발짓으로 심사를 받는 중간에도 내가 하고싶은 말만 단어를 나열해 가면서 심사관에게 이야기 했다. 우리가 타고갈 비행기는 벌써 떠났는데 이제 어떡하느냐고 하니 심사관은 천연덕스럽게 "Don't worry, Be happy!" 라고 하는것 같으면서 걱정하지 말라고 자기네가 알아서 샌프란시스코로 보내줄테니까. 당시에는 스마트폰도 없어서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마중나올 형제들에게는 연락할길도 없었다. 혼자서만 속으로 끙끙앓으며 이민국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니까 새로 비행기티켓을 주는데 호놀룰루-샌프란시스코 직항이 아닌 호놀룰루-로스엔젤레스-샌프란시스코 행 티켓이었다. 생전 처음오는 미국행에 LA를 경유하여, 비행기를 환승해야 하고, 그것도 모자라서 항공사가 달라서 도착과 출발하는 터미널도 다른곳이었다. 6월 한여름의 뙤약볕속에서 처음 도착한 LA 공항에서 환승할 항공사는 United Airline이다. 환승시간까지 불과 1시간 10분 정도밖에 안남았다. 비행기에서 빠져나와 도착터미널에서 다른항공사의 출국터미널로 찾아가는데 터미널 밖에서 그래도 조각맟춤으로 영어를 시도하면서 물어보았다. "Where is United Airline domestic terminal?"(유나이티드 에어라인 국내선 터미널이 어디에 있습니까?) "Go straight ahead couple blocks."(똑바로 두블락만 더가면 됩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아시안 젊은부부는 Hand-carry 여행가방을 하나씩 바퀴소리도 요란하게 끌면서 도대체 한블럭이 얼마나 되기에 아직도 안끝나나? 하면서 탑승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에어라인 터미널 첵인카운터 앞으로 가니 줄이 길게 서있어서 제일 앞에있는 손님에게 티켓을 보여주면서 이 비행기인데 지금 첵인을 해야한다고 손짓발짓을 하니까 티켓을 보더니 자기앞에서 바로 카운터로 보내준다. 그야말로 탑승시간 마감 5분도 안남은것 같아서 첵인을 끝내자마자 탑승 Gate으로 달려갔더니 문을 닫으려고 하길래 큰소리로 "Stop"을 외치면서 달려가니까 잠시 멈칫하더니 티켓을 보고는 빨리 달려가라고 재촉을 한다. 당시에는 모든 항공기들이 지금처럼 탑승통로가 없고 활주로에 비행기가 서있고 움직이는 사다리 계단을 타고 기내로 들어가는 과정인데 탑승이 거의 끝나고 사다리를 치우려고 하기에 전세계에서도 유례없이 떠나려는 비행기에다 "Stop"을 외친자는 아직까지도 내가 유일하지 않았을까를 생각하면서 천신만고끝에 비행기좌석에 않아서 안전벨트를 매자마자 비행기는 서서히 샌프란시스코쪽을 향하여 활주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1979년 6월(JUN) 10일자 입국비자와 함께 하단에는 영주권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