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도 한국으로 와서 자리를 잡고, 저도 가족들과 함께 열심히 위에 계신분의 손에 붙들리어서 특별히 근무가 없는날에는 주일 오전과 저녁예배, 수요저녁, 그리고 금요일밤 기도회까지 참석하는 맹신이 아닌 순종하는 크리스찬으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지역사령관인 여단장의 운전기사가 된지 얼마되지 않은 어느 날! 제가 섬기는 여단장은 한국에서의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고 있었다. 어느날 이른 아침에 나를 부른다. 자기 개인 자동차(POV-Private Own Vehicle) 키를 주면서 지난밤에 손님이 사택에 와서 주무셨는데 그 손님의 집까지 모셔다 드리고 오라고한다. (천기누설-여성 입니다) 부대인 봉일천에서 멀지않은 문산까지 정중하게 모셔다 드리고 돌아와서 여단장에게 키를 돌려주고 하루의 일과를 시작했다. 오후 근무시간이 거의 끝나가는 4시경에 여단본부 행정반 앞에서 세상이 무너질듯한 큰소리가 들린다.
가~ㅅ 뎀! Who drove my car today?(오늘 누가 내차 운전했어?).... 100m 거리에서도 크게 들릴정도로 화가난 여단장의 불호령에 행정반의 부관을 비롯한 장교들도 그앞에서 사시나무 떨듯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나는 그말을 듣고 속으로 ("지가 몰라서 묻나, 아침에 내가 자기 손님 모셔다 드리고 온것을 뻔히 알면서") 그러면서 번개불보다 더빠른 속도로 달려가서 네, 제가 운전했습니다. 했더니 내가 저녁에 차를 사용할려고 했는데 Small 라이트가 켜져 있어서 Battery가 거의 방전되었잖아? 이제 어떻게 할거야? 하고 소리를 지르는데, 옆에서 듣고있던 장교들은 지난번 운전병이 운전을 위험하게 한다고 길에다 버려두고와서 운전병을 교체한것을 아는지라 그들 모두가 마음 속으로 이제 드라이버 Yoon은 영창가게 생겼네! 라고생각들을 했다고 나중에 얘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한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알겠습니다. 제가 알아서 외출하시는대 지장이 없도록 처리해 놓겠습니다" 하고는 여단장 군용세단을 가지고 부대밖에 있는 자동차 밧테리 정비소에 들려서 정비사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차종을(미국 GM 쉐비) 알려주었더니 새밧테리 하나를 준비해가지고 연장도구를 싣고 제차에 함께 타고서 부대안에 들어가서 밧테리를 새것으로 교체했습니다. 불과 1시간여동안에 벌어진 헤프닝이었습니다.(또 하나의 비밀-밧테리 사이즈가 정확하게 맞지않아서 스치로폼으로 움직이지 않게 고정 시키기도..^^) 아마 비용이 당시에 출장비 포함해서 3~4만원 지불한것 같습니다.
벌써 일과시간인 오후 5시가 지나서 여단장은 사택에 부여단장(중령)과 함께 있는데 가서 보고를 드렸습니다. 밧테리를 새것으로 교체해서 차가 쌩쌩하게 움직이니까 이제 마음놓고 사용하시라고 말씀 드렸더니 그제서야 분이 조금 풀리는듯 저보고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Yoon, 네가 너를 얼마나 좋아해서 아끼는데 그런 실수를 다 하냐고 그러면서 밧테리 교체가 얼마 들었냐고 하길래 아닙니다! 제가 지불했습니다. 했더니, 우~와! 정말 미국인 같은 발상입니다. 그러면 너와 내가 50%씩 부담하자고 하면서 절반을 저에게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고싶은(?) 영창도 못가고 해프닝은 해피엔딩으로...^^
얼마후에 여단장은 본토로 전보발령이 나서 이삿짐을 정리하는데 저한테 자기 자동차를 가지고 부산에있는 미군부대에 가서 drop off 시키면 그곳에서 선적하여 차가 미국으로 간다고 하면서 3일 휴가를 줄테니 가족들을 데리고 차를 부산으로 가지고 가라고 하면서 개인적인 휴가비로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라도 하라고 거금 $100불도 주었습니다. 졸지에 생각지도 않았던 가족들을 데리고 부산까지 자가용으로 가서 자동차를 부대에 인계시키고 해운대에서 2박3일 휴가를 즐기고 오는 행운도 있었습니다. 이 여단장은 월남전에도 참전하였었고, 부친이 미군 장성이었던 뒷배경이 좋은군인 이었는데, 한마디로 영웅호걸 타입이라 주색을 조금 즐기는 바람에 한국에 와있는 동안에 함께있던 와이프와 이혼도 했을 정도라, 장군 진급을 못하고 대령으로 예편하였습니다. 특히 친한파라 인근에 많은 한국군 장성들과 일반인들을 많이 알고 있어서 추석 하루전날 저는 양주(박통때문에 유명세를 탄 시바스 리걸)를 약 20병 정도 선물포장을 해서 전달하느라고 혼자서 하루종일 서울 근교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새로운 후임 여단장은 전임과는 다르게 아주 범생이 여단장 이었습니다. 아마 장군진급을 염두에 두고 생활을 하는것 같았습니다.(나중에 제가 용산에서 근무할때 장성진급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가 운전할때도 뒤에서 스피드를 보고 있다가 규정속도보다 지나치면 슬로우다운!을 외치는 그런 스타일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운전이 규정속도로만 하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모르는것 같았습니다. 어느 주일날은 서울 용산의 커미서리로 장보러 가자고 하면서 아이스 박스에 얼음까지 채워서 식료품을 구입해 올정도로 깐깐한 정통 스타일의 군인이었습니다. 하여튼 저는 영어가 서툴러서 문제가 생길까봐 오히려 최선을 다해서 섬기는 모습이 그들의 눈에도 그대로 비추었는지 후임 여단장에게도 (귀염과 사랑을 받다가^^) 2사단 근무가 1년이 넘어서 여단장에게 자녀들 교육문제도 있고해서 용산에 가서 근무할려고 하니까 보내(놓아)달라고 했더니 자기에게는 내가 꼭 필요한데 가야하냐고 하길레 꼭 가야한다고 했더니 그러면 나보고 나처럼 근면성실한(자뻑) 후임 운전병을 구해놓고 가라고 해서 후임을 구하고, 용산에 와서는 제가 갈수있는 부대에 가서 자리보직을 받아가지고 드디어 두번째 한국근무 하면서 처음으로 용산으로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제가 옮긴 부대는 용산 미8군의 "21st Transportation Company"(21 수송중대)인데 약 200여명의 군인들이 근무하는데 절반은 카투사, 절반은 미군으로 이루어졌고 이름 그대로 대부분이 운전병과를 가지고 있었으며 저의 보직은 분대장으로 소대 선임하사와 함께 매일같이 8군내의 사무실에서 운전병 요청이 오면 그날 차량과 함께 운전병을 지원해주는 역할이라 아침에 출근해서 그날의 차량과 운전병들을 배치해주고 나면 할일이 없어서 빈둥거리다가 오후 3시쯤 되면 선임하사와 함께 영외로 퇴근하는 특과중의 특과였습니다.
**우리 카페의 회원이신 나무늘보님은 저의 청운국민학교 후배이고, 또한 카투사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할때 제가 잠시 미군으로 있던 용산의 21 수송중대에서 근무해서 시기는 다르지만 군대 후배이기도 한 인연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육군의 계급장입니다. 영관급의 계급은 무궁화(골드)1개가 소령, 무궁화(실버)1개가 중령, 그리고 대령은 특이하게 독수리마크가 대령입니다. 현재는 General of the Army(5 Stars)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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