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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군대이야기(미육군 8년 & 한국군 3년)

3번의 군입대중 첫번째인 한국군이야기 #3(만기 전역)

by Diaspora(복수국적자) 2023. 8. 10.

  이제 자대배치를 받고 우여곡절! 천신만고! 등등의 표현으로도 부족한 34개월 16일동안의 군대생활을 무사히 생존하여 만기전역을 하기까지 간단하게 정리해 봅니다.

 

  @입대후 첫번째 맞이한 정기휴가!

  1973년도 봄, 입대한지 8~9개월 정도 지나서 드디어 30일의 첫번째 정기휴가를 나왔습니다. 전방에서  근무하고 있는것도 아니고 서울에서 근무하면서 2주정도에 한번씩은 주말에 외출, 또는 외박을 나올수 있었기때문에 정기휴가라고 해서 아주 큰 감흥은 없고 단지 고참들의 괴롭힘에서 한달간은 자유롭다는것 뿐이었습니다. 휴가증을 받아들고 휴가신고를 한후 집에오니 이게 머선일? 구청에서 군입대를 위한 신체검사 통지서가 날아와 있었습니다. 아니, 군대입대하여 벌써 첫휴가를 나왔는데 무슨 군대가기전에 필요한  신체검사통지서를 발부하다니 행정처리가 이렇게 늦어서야... 관할구청에 달려가서 병역담당자에게 군복을 입은모습을 보여주며 큰소리 한번치고 왔습니다. ㅎㅎㅎ

 

  @군대에서 맞이한 연좌제!

  연좌제란, 범죄자와 일정한 친족관계에 있는 자에게 연대적으로 그 범죄의 형사책임을 지우는 제도로서 대한민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에 없어짐.

  우리가 작전배속되어 근무하는 부대가 정보사령부이다 보니 상급부대에서는 모든 사병들에게 (2급비밀 취급인가서)를 요구하기때문에 나도 군대에 있을때 비밀취급인가를 위한 신원조회를 시작하였다. 당시에 우리 집안의 호적에는 부친이 장남이기때문에 조부모로부터의 자녀들이 분가하지 않으면 나머지 형제자매는 그대로 호적에 남아있는데 그중에 6.25때 행방불명이 된 삼촌(부친의 남동생)이 한분 계셨는데, 당시에 월북을 했는지 어떻게 되었는지 생사도 모른채 사망신고도 되어있지 않았고 그냥 행방불명으로 남아 있었다. 그것이 문제가 되어 나는 호적상으로는 눈에 보이지않는 빨갱이처럼 되어서 비밀취급인가 부적격자로 되었다. 이것이 나의 인생에 얼마나 힘든과정을 겪게 되었는지 안겪어본 사람들은 모른다. 나중에 제대하고 해외를 가기위해서 여권신청을 하면 그때마다 당시에는 신원조회를 하면 나는 무조건 연좌제에 의해서 신원조회가 당시의 남산에 있는 중앙정보부로 넘어간다. 그냥은 신원조회가 통과를 못하기때문에 여권발급이 안되었다. 이럴때마다 고위급 공무원 2인이상의 신원보증이나 아닌말로 빽이 있어야만이 신원조회를 통과할수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고 군대생활을 절반쯤 보낸 어느 날, 나도 상병이 되고 중고참이 되어 군대생활에서 조금은 수월해지고 있을때 상급부대에서 공문이 내려왔다. 예하 부대에 신원조회 부적격 사병은 모두 다른부대로 전출을 보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명령이... 군대생활을 해보신분들은 아시리라, 군대생활을 하다가 다른 부대로 전출을 가면 또다시 고생문이...ㅠㅠ 결국에는 군대생활 15~16개월 정도를 남겨놓고 전출명령을 받아서 사진병과로서 비밀취급인가가 없어도 근무할수 있는 부대로 가게되었다.

 

  그곳이 바로 당시에 대한민국의 수도 한복판에 있던 육군본부 사진반이었다. 이곳 사진반에서는 주로 행사 사진을 많이 찍고, 국군영화제작 같은것을 담당하기때문에 비밀취급인가가 없어도 근무할수 있는곳이라 육군본부 통신대대의 사진반으로 전출을 갔다. 나중에는 특과중의 특과였지만 바로 전출가서는 당시에 유행하던 말로 표현할수 없는 구타와 기합으로 중고참 상병이 나보다 졸병들에게 수모를 당하는 전입신고를 당하였다. 졸병들이야 고참들이 명령하니까 나에게는 미안해도 할수없이 명령에 따라서 감히 상급자를 구타하는 하극상도...(나중에 그들은 나에게 이해와 용서를 빌었지만)

 

**사족: 나중에 미국에 이민가서 미군으로 근무할때 한국에 와서 미군장성과 근무를 했기때문에 미국방성에서 비밀취급허가(Secret Clearnce)를 위한 신원조회를 했는데 무사히 통과했다는 웃고픈 얘기, 그것도 2급이 아니고 제일 높은단계의 Top Secret으로...^^

 

  @75년 4월 17일 만기제대 하기까지의 기타 사건사고

  74년도인가? 대한민국에서 유신헌법 찬반을 위한 국민투표가 있었다. 군대에서도 투표를 하기때문에 투표에 관한 교육과 함께 지시사항이 하달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나는 연령미달로 투표권을 한번도 행사하지 못했다. 당시의 투표는 찬반투표였는데 투표를 위한 교육은 이러하였다. 투표함이 두개가 있는데 하나는 찬성, 다른 하나는 반대표를 넣는곳인데 교육내용은 무조건 찬성함에다가 넣으라는 교육이었다. 비밀투표라고는 하지만 선임하사가 투표함에 넣는것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에는 대학 재학중에 운동권(민주화) 학생으로 찍혀서 군대에 입대한 젊은이들이 많았는데 그들이 혹시라도 엉뚱한 표를 찍을까봐서... 하지만 결과는 꼭 문제학생이 있어서 그 와중에도 반대표가 나왔다는...^^ 

 

  또하나의 대형사건은 1974년 8월 15일인가? 8.15 경축행사장에서 문세광의 저격으로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는 사건이 있어서 군부대는 외출외박이 금지되는 비상사태로...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국방부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돌아가서 1975년 4월 17일 제대명령서를 받고 제대신고를 한후에 마지막으로 3박4일동안 전역자들에게 하는 새마을 교육을 받으러 수색에 있는 육군 제30 예비사단에 출퇴근을 하였다. 이미 제대신고를 끝낸 민간인이나 마찬가지 신분인데도 머리가 길다고 교육대 장교가 옆에있던 일병에게 머리를 밀라고 시켜서 당시에는 소위 바리깡이라고 하는 기계로 머리 한가운데를 경부고속도로 개통하듯이 한번 쭉 밀어놓았다. 지금은 도저히 납득할수 없는 일들이 당시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루어 졌지만 저는 무사히 대한민국의 육군을 만기제대 하였습니다.^^  

육본 사진반에서 근무할 당시에 정릉 뒷동산에서 멋진컷을... 군복바지 하단에는 당시 헌병들이 넣는 링을 넣어서 멋도 내고 왼쪽가슴에는 영문으로 ROK ARMY OFFICIAL PHOTOGRAPHER라고 명찰도 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