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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군대이야기(미육군 8년 & 한국군 3년)

드디어 인생 3번째의 군입대 #1(병과도 바뀌고 한국으로 발령)

by Diaspora(복수국적자) 2023. 8. 22.

  1985년 1월에 4년의 미육군 생활을 정리(제대)하고 잠시 휴식을 가지면서 앞으로 무엇을 할것인지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에는 주말에도 열심히 일하느라 가족들과 함께 다니지 못했던 교회도 출석을 하면서 껍데기만 크리스찬의 신앙생활도 새롭게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직장을 찾아볼 생각은 없었기에, 만약에 직장생활을 할것 같으면 미군에서 제대를 하지않고 그대로 군대생활을 하는것이 베네핏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좋기 때문에 제대를 한 이유는 무엇이라도 조그마한 자영업을 해보려고 제대를 했는데 그동안 4년동안 군대생활과 1주일에 30여시간의 Full time 같은 파트타임을 하고 부부가 열심히 일을 해도 남매와 함께 4식구가 생활하고 저축을 해보았자 얼마나 되었을까? 얼마 되지도않는 자본금으로 자영업을 찾는다는것이 진짜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것 보다도 더 힘들었던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현실은 가정을 이끌어 나가야하는 가장으로서 더군다나, 이민사회에서는 한달만 일을 안하고 쉬면 저금통장의 잔고가 쉭하고 빠져나가는 소리가 폭풍전야에 몰아치는 강한 바람소리 마냥 나의 귓전을 울리는데, 당시에 주위에서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가족간의(형제자매) 불협화음은 나를 정신적으로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때로는 남모르게 눈물도 흘려가면서 당시에 새롭게 시작한 신앙생활속에서 위에 계신분에게 몸부림 치면서 매달려 보기도 하였다. 그리고는 결심을 한것이 군대에 다시 들어가서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곳으로 떠나자는 생각이 들었다. 미군은 제대한 후 90일 이내에 재입대를 하면 제대할때 가지고 있던 계급과 월급 호봉을 그대로 유지 시켜주는 제도가 있었다. 그대신에 전에 가지고 있던 병과(보직)는 새로운것으로 바꾸어야만 하는데 그 이야기는 전에 가지고 있던 편하고 좋은 병과는 계속할수가 없고 새로운 병과를 선택해야 하는데 군대에서 제시하는 새로운 병과들이 대부분 보병이나 포병, 기타 등등이 대부분 전장에서 전투에 앞장서는 병과들이었다. 그나마 그중에서 차선의 선택을 한것이 트럭 드라이버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트럭 운전병과를 선택하고 운전학교 교육이 끝나면 가족과 함께 2년동안 독일로 해외근무를 나가는 조건으로 재입대 서류에 싸인을 하고 드디어 나의 인생에서 3번째의 군입대를 하여 또 다시 동부 뉴저지주에 있는 Fort Dix의 운전학교로 떠나게 되었다. Fort Dix는 처음에 군에 입대하여 영어학교와 신병교육을 받았던 곳이라 낮설지는 않았다. 트럭운전이라고 해서 일반 트럭이 아니고 16 wheels 트레일러이다. 운전학교에 도착하여 명령서를 제출하고 운전학교 입학을 하니, 신병훈련때와는 완전 다른세상이었다. 계급도 있고, 4년의 군대생활도 있기때문에 어느 정도의 많은 자유가 있었다. 아침 8시경부터 시작하여 오후 5시까지의 운전교육을 마치고 나면 기존의 군대처럼 자유시간이 있었고 취침전에 간단한 인원파악을 하고 주말에는 마음대로 외출도 하는 운전학교의 생활이 6주동안 계속 되었다. 주말에는 인근에 있는 한인교회에 출석을 하면서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였고, 이때부터 나의 삶은 보이지않는 위에 계신분의 강권적인 인도하심으로 어떤 힘에 의하여 인도가 되고 이끌림을 받으며 오늘날까지 살아가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교육을 받는동안에 나는 국방부에다 할수 있으면 교육후의 근무지를 예정된 독일로 가지않고 떠나온 CA 지역의 부대로 가서 근무하던지 아니면 다른곳이라도 갈수 있도록 바꾸어 달라고 청원 서류를 올렸더니 운전교육을 수료하기 직전에 독일로 예정된 근무지가 한국근무로 바뀌어 나왔다. 이 또한 위에 계신분의 인도하심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한국파견 근무가 경쟁이 심하여 본인이 원해도 마음대로 가지를 못하던(나는 갈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었지만) 상황이었는데 한국근무를 원하지도 않던 나에게는 한국으로 가라는 명령서가 내려왔다. 6주간의 운전교육을 수료하고 군대에서 발급하는 트레일러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한국으로 떠나기전에 사랑하는 아내와 남매가 기다리고 있는 CA주의 집으로 돌아갔다. 가족들에게 다시 한국근무를 하게 되었으니까 내가 먼저 한국으로 가고 가족들은 나중에 한국으로 이사갈 준비를 하도록 아내에게 얘기를 하고, 인근에 있는 전에 근무하였던 부대로 인사를 하러갔다. 근무하던 의무대대의 대대장(육군 중령)이 나를 보더니 매우 반가워 하면서 군대에 재입대 한것을 모르고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 제대하고 자영업을 하겠다고 하더니 잘 하고 있느냐? 등을 물어보는데 나의 입에서 나오는 대답은 완전 엉뚱한 대답이었으니....
 
  "Sir! 저는 다시 군에 재입대 해서 한국으로 발령을 받아서 가기전에 인사를 드리러 왔습니다."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그러면 미리 나에게 연락이라도 하지 그랬냐고 하면서 병과가 무엇이냐고 묻기에 트럭 드라이버라고 했더니, 아니 너처럼 제대하기전의 병과인 Medical Supply 일을 잘하는 사병을 어디에서 찾아낼수가 있겠느냐고 하면서 매우 아쉬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저는 제대하기전에 이 대대장이 근무를 너무 잘했다고 표창을 상신하여 국방부장관 명의로 수여되는 공로메달까지 받았기 때문에 저를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더니 근무지가 어디이냐? 한국으로 갑니다 했더니 별안간에 자기 책상위의 노트를 한장 찢어서 펜으로 친필편지를 하나 간단하게 써서 나에게 준다. 이편지를 가지고 한국으로 가면 보충대에 서류를 제출하지 말고 용산의 121 병원으로 가서 자기 친구 육군대령인 병원의 부원장을 찾아가서 편지를 보여주면 그 병원에서 Medical Supply로 보직을 줄것이다. 라고 하면서 자기가 간단하게 친필로 써서주는 편지가 타이핑을 쳐서 주는 형식적인 편지보다 더 효과가 있다는 말도 함께 하면서.... 저는 편지를 받아들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이정도의 편지라면 100% 한국에 가서 용산병원에서 근무하는것은 따논 당상이라고... 4년전 처음 근무할때도 용산병원이 소원이었지만 가지못하고 동두천의 2사단에서 근무했는데 이번에는 이렇게 든든한 빽을 가지고 가니....  이때부터 마음속에는 위에 계신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군대에서 운전교육을 받는동안에도 열심히 주일을 지키며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며 신앙생활을 하니까 이렇게 또 사람을 통해서 좋은것을 허락하시는구나 하는 감사한 마음이... ㅎㅎㅎ

     군대에서 받은 트럭운전면허는 이것을 운전할수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