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모가지는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라는 말처럼 국방부의 시계는 쉬지않고 돌아가서 신병훈련소에 입대한것이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덧 6주간의 세월이 흘러서 5월의 첫째주! 살을 에이는 듯한 1월말, 동부의 매서운 추위속에서 시작한 영어학교를 수료하고 3월 중순의 꽃샘추위속에서 시작한 신병교육대! 20대후반의 신체도 조그마한 대한민국의 젊은이는 신체적으로는 대부분 머리 하나씩은 더 큰것같은 육척장신의 미국의 청소년들, 젊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군대에 들어온 10대 후반의 틴에이저부터 많게는 내나이 또래의 30에 가까운 젊은이들 속에서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는 언어의 핸디캡 속에서도 눈치 하나로 무사히 신병교육대 수료식을 마치게 되었다.
잊지못할 1981년 5월 6일! 바로 신병교육대 훈련을 마치고 퇴소식을 거행하는 날이자 한국에 가있던 아내가 무사히 해산을 하여 아들을 출산하였다는 소식을 함께 받았다. 기분이 묘했다. 말로 표현할수 없는.... 아~나도 이제 한 생명의 아빠가 되었다니, 또 한편으로는 그 자리에 함께 해주지 못한 아내에 대한 미안함도... 언어의 문제만 없었다면 영어학교를 거치지 않고 제대로 모든과정을 마치고 지금쯤은 한국으로 전출명령을 받아서 사랑하는 아내의 곁에서 함께 출산의 고통과 기쁨을 나눌수 있었을텐데....
복잡미묘한 기쁨의 순간도 잠깐, 훈련소 퇴소식과 함께 후반기교육을 받으러 가기위한 전출명령지와 그곳까지 가는 비행기표를 받아들고 다시 여정길로...미군의 시스템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행동이다. 신병훈련소에서 후반기교육을 받으러 가기위해 함께 단체로 가는것이 아니고 각자에게 필요한 항공권과 여행경비를 지급해주고 알아서 몇월몇일까지 후반기교육대에 보고하라는 명령서를 가지고 나는 또 시골에서 무작정 상경한 촌닭처럼 군대의 커다란 더블백을 하나 둘러 메고 공항으로 가서 앞으로 6주동안 교육받아야할 학교로...
나의 군대 병과는 Medical Supply Specialist(의료품 보급병)이기때문에 미국에서 제일큰 국방부소속의 Texas주 San Antonio에 있는 Medical School로 가는길이다. 여기 학교는 그야말로 미국의 의대처럼 미군에서 군의관이 되기위한 코스서부터, 약사, 간호사, 등등 의료분야에 관한 병과를 가지고있는 군인들이 모두 교육을 받는 종합의과대학 같은곳이었다. 육군뿐만 아니고 미군에 속한 육해공군 장병 모두가 이곳에서 교육을 받는다. 손짓발짓 눈치코치로 물어물어 학교사무실에 입학신고를 하고 기숙사의 방을 배정 받았다. 이곳은 일반군대와는 전혀다른 시스템이다. 진짜 대학의 기숙사 같이 모든것을 자율적으로 알아서 행동하는 곳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자기가 배정받은 수업이 있는 교실에 가서 수업을 받고 하루의 수업이 끝나면 완전 자유시간이다. 신병훈련소에서 6주동안 눈코뜰새 없이 훈련받다가 자유분방한 이곳에 와서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되기도 하였지만 나는 금방 적응이 되어 주말에는 그곳에서 알게된 나같은 한국계 교육생들과 함께 시내에 나가서 관광도 하고, 주일에는 한국음식을 공짜로 먹기위한 목적으로 인근에 있는 한인교회를 찾아가서 엉터리 신자노릇을 하였다. 당시에는 엉터리 신자였지만 이 또한 위에계신분의 섭리가운데 일부였었다는 것을 멀지않은 날에 깨닫게되었고, 지금은 거의 40여년 가까이 24시간. 그분의 철저한 관리아래 살고있다.^^
6주동안의 교육은 가정에서 주부들이 가계부를 작성할 정도의 산수실력과 기타 병과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교육이었지만 수업을 제대로 알아들을수 없는 거의 문맹에 가까운 실력을 가지고도 탁월한 산수계산 때문에 수료할때는 수료생 30여명 가운데서 수석으로 졸업하는 영예를...
의무학교 수료를 하고 다시 한국으로 배치되는 전출명령서를 가지고 고향집이 있는 캘리포니아에 잠깐 들렸다가 북가주 Sacramento 인근에 있는 군용 비행장으로 가서 드디어 한국의 오산비행장을 향해서 출발, 오산에 도착하여 많은 한국으로 전출명령을 받은 군인들과 함께 군용버스를 타고 서울 용산에 있는 미8군 영내의 신병전입자 부대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고 잠시후에 보니 밖에는 사랑하는 아내가 태어난지 2개월의 아기를 업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해 12월에 한국의 친정으로 보낸후에 약 7개월여만에 해후! 지금 같으면 뜨겁게 포옹해주고 12금 정도의 뜨거운 입맞춤도 해줄수 있을것 같은데 그때는 왜 그렇게 어색했는지...ㅎㅎㅎ
한국에 도착하여 얼마후 동두천의 미 2사단 본부 의무대대에서 근무할때, 지금은 진짜 촌스럽게 보이는 사진이지만 81년도 그당시에는 그런데로 유행을 따라가는 괜찮은 모습이었습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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