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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군대이야기(미육군 8년 & 한국군 3년)

미육군(US Army)입대! #2(영어학교)

by Diaspora(복수국적자) 2023. 7. 9.

  1981년 1월 말! 드디어 미 육군 신병훈련소에 입대하기 위하여 입대지원 신청모병소인 할리우드 모병소에서 동부 New Jersey주에 있는 미 육군 신병훈련소중의 하나인 Fort. Dix로 입대명령을 받고 비행기 티켓과 기타 그곳까지 어떻게 가는지의 여정 인포를 받아가지고 혈혈단신으로 LA 국제공항에서 국내선을 타고 출발. 밤늦은 비행기에다 서부와 목적지인 동부까지는 같은 미국 내에서도 시차가 3시간이나 나는 곳이라 직항인데도 5시간여를 밤새 날아서 다음날 오전에 뉴욕의 한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가르쳐준 정보대로 셔틀버스를 타고 약 1~2시간을 넘게 타고 가서 드디어 신병훈련소 입영대기소에 입소하였다. 한국의 논산 신병훈련소로 말하자면 신병훈련소로 넘어가기 전에 대기하는 수용연대 같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입소에 필요한 서류를 다시 작성하고 나같이 외국에서 온지 얼마 되지 않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신병훈련소 입소대기장병들은 토익과 같은 영어시험을 또 다시 치루는데 이번에는 군대에서 훈련소입소 하는데 필요한 커트라인 점수가 되지 않아서 신병훈련소 입영명령서 대신에 영어학교, 즉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School에 먼저 6주 동안 입학을 하라는 명령서를 받았다.
 
  수용연대 내에 별도의 ESL 학교가 있는데 이곳에서 영어교육을 받는 동안에도 기간은 군대복무기간에 들어가고 월급도 정상적으로 나온다. 다시 말하자면 숙식 제공하면서 봉급도 받으면서 6주 동안 영어 학교를 다니는 것이었다. 아마 군대가 아니고 일반사회에서 그렇게 한다면 입학경쟁율이 치열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입대할 때 모든 계획이 나의 시간표대로 정해져 있어서 신병훈련소 6주간의 기본교육을 마치고 나면 후반기교육인 MOS(Military Occupational Specialty) 군사특기 교육을 6주 동안 Texas주의 샌안토니오에 있는 Fort Sam Houston(미군 Medical School)에서 나의 주특기인 Medical Supply(의료 기기 및 약품보급병과) 교육을 마치면 5월초에 한국으로 근무발령을 받아서 가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계획은 한국에 가서 있는 아내에게서 태어날 우리의 아들 출산시기에 맞추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않았던 영어학교 6주간이 새로 일정에 생겼으니 아들이 세상에 태어날 때 아내옆에 있으리라는 나의 기대는 물거품처럼 멀리멀리 훨훨 날아가고 있었으니, 그리하여 6주간의 영어학교 가 시작되었다. 학생들의 90% 이상이 스페니쉬를 구사하는 대부분 프에르토 리코 출신이었고 약간의 아시안 들이 있었다. 한국인이 3명 그리고 필리핀계가 조금 있었다. 하지만 영어학교라고 하여도 군대입대를 위한 교육이라 영어를 가르쳐도 대부분 군대용어였다. 제식훈련에 필요한 앞으로-가! 뒤로 돌아-가! 우향 앞으로.. 좌향 앞으로 등등과 기타 군대장비의 용어들을 가르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한국에서 책상 앞에서 문법적으로 배우던 영어 학습에 길들여져 있던 한국 사람들에게는 너무 유치한 교육같이 보여서 수시로 항의도 해보고, 나는 또 한국에서도 대한민국의 육군 3년의 병역의무를 마치고 이민 갔기 때문에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렇지 제식훈련 같은 것은 진짜 그곳의 조교들도 인정해주는 최고였다.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 라는 말처럼 불평과 불만 속에서도 어느 사이에 6주간의 세월이 흘러서 수료식을 하고 신병훈련소로 들어가게 되었는데 6주 동안의 교육과정동안에 영어시험성적이 가장 많이 향상된 학생에게 1등졸업생의 영예를 주는데 시험성적을 비교해본 결과로 볼 것 같으면 내가 1등 졸업생이 되는데, 시험성적이 제일 높아서가 아니라 처음에 시험을 치렀던 점수에서 마지막 졸업시험때의 점수 차이가 가장 많이 향상된 학생을 뽑는 것인데 워낙에 입학시험때 나의 성적이 낮았기 때문에 성적향상이 매우 좋았다. 그래서 졸업식 때의 기대감에 약간은 들떠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1등의 영예는 내가 아닌 히스페닉계의 프에르토 리코 학생에게 돌아갔다. 학교의 조교를 비롯한 모든 행정적인 것들이 프에르토 리코 출신의 히스패닉 군인들이 좌지우지 하다 보니 내가 속으로 생각하기에는 보이지 않는 민족적 차별이 있었다고라고 생각할 수밖에....
 
  어찌 되었든지 무사히 6주간의 영어학교를 수료하고 이제 신병훈련 기본교육대로 넘어가서 진정한 미 육군이 되는 신병교육을 받기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