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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군대이야기(미육군 8년 & 한국군 3년)

미육군(US Army) 입대! #1(미군 지원)

by Diaspora(복수국적자) 2023. 7. 9.

  미군(US Army) 입대!
  미국이민을 간 것이 1979년도 6월 10일인데 인생에 있어서 두번째 군입대이자 미군에는 첫 번째(?) 입대한 것이 81년도 1월이니까 이민생활 약 1년 6개월만에 미육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원래의 계획에는 미군입대는 없었는데(개인적 으로는 이민온 한국사람이 미군으로 한국에 나가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저희 부부의 이민생활은 이미 저의 인생에 3번의 군입대라는 위에 계신분의 섭리와 인도하심으로 군에 입대하여야만 하게끔 상황을 이끌어 가셨습니다.
 
  맨땅에 헤딩하듯이 빈주먹으로 시작한 이민생활에 부부가 하루에 12시간 이상씩 일하며 기본적인 식생활 이외에는 거의 안쓰고 돈을 저축하다 보니까 당시에 우리의 생각으로는 거금인 약 $1만불 정도의 목돈이 1년만에 모여서 그것으로 종자돈을 삼아 남의 밑에서 일을 하지않고 내 자영업처럼 할수있는 빌딩 Maintenance! 소위 말하는 청소업을 부부가 하기로 결정하고 이미 다른사람이 하고 있는 청소대행업을 권리금을 주고 구입하였습니다. 밤에 나가서 부부가 문닫은 사무실 같은곳을 청소하는 일이었습니다.
 
  책상위를 깨끗이 닦고, 휴지통도 비우고 화장실도 청소하는, 그야말로 몸으로 때우는 육체노동이지만 하루밤에 6~7시간 정도만 부부가 열심히 하면 한달에 약 $2천불 정도의 수입이 들어오는 일이었습니다.늦은밤에 나가서 새벽까지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때로는 파김치가 되는 것 같은 피로감도 있었지만 남의 수하에서 일하지 않고 나의 자영업이라는 기쁨속에 이제는 얼마 안있으면 또 목돈을 모아서 더많은 빌딩청소관리를 사서 사람도 채용해 가지고 하다보면 몇 년안에 집도 살수 있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열심히 부부는 청소, 청소, 청소를...
 
  하지만 계획은 사람들이 할지라도 인도하시는 분은 위에 계신분이라는 성경말씀처럼 우리의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뿐 위에 계신분의 인도하심은 예정된 군입대쪽으로 방향을 틀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날도 다름없이 부부는 열심히 문닫힌 사무실을 열고 들어가서 휴지통도 비우고 책상도 닦고, 화장실 청소도 하는데 고무장갑을 끼고 변기를 닦고있던 아내가 갑자기 웩~웩! 소리를 내면서 토를 할것만 같이 헛구역질을 하기에, 변기를 청소하다 보니까 더러운 이물질을 보고 구역질이 나나보다 생각했는데, 2~3일을 계속하는데 순간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그때는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아들이 세상에 오겠다고 이제 막 신호를 보내는데 저의 아내는 임신초기부터 입덧이 심하여 물도 냄새가 난다고 마시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했습니다. 함께 일하기는커녕 집에서 쉬고있는 것 조차 힘들어하던 아내를, 며칠동안 제대로 먹지 못하여 그냥 놔두며는 아무래도 초상을 치를 것 같아서 인근에 있는 한인 의사를 찾아갔더니 입원을 시키고 영양제 수액(IV)주사를 놓아주고 하룻밤 지낸후에 입덧을 약화시켜주는 약을 처방 받아서 퇴원을 했지만 약처방도 효과가 없었습니다.
 
  당시에 건강보험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저희들인데 지난번에 하루 입원하여 영양수액 한병맞고 온 것이 전부인 병원의 Bill이 날아왔는데, 화들~짝! 얼마인지 상상들 해보시기를.. 하룻밤 병원 입원실 사용료만 $4,000여불이 날아왔습니다. 미국은 따로 계산을 하기 때문에 의사진료 비용은 나중에 또 날아오고... 당시의 $4,000여불의 돈의 가치를 쉽게 풀어드리자면 제가 군에 입대하여 받은 초봉의 약 6개월치에 해당하고, 아니면 둘이서 살기에 괜찮은 아파트 월세로 약 2년치에 해당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이에 충격받은 저희 부부는 의논을 했습니다. 앞으로 병원에도 자주 가야하고 출산도 해야하는데 건강보험이 없으면 안되겠고, 또 하나는 부부가 둘이서 밤에 6~7시간의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하던 것을 혼자서 하려니까 10시간 이상씩 해야하는데 이렇게는 안되겠구나 의논한 끝에 제가 미군에 직업군인으로 입대하기로 결심을 하고 아내는 그동안 한국의 처갓집에 가서 있으면서 병원은 용산에 있는 미8군 병원을 이용하는 것으로 결론을 맺었습니다. 미군의 군인가족이 되며는 전세계 어디에 있더라도 미군에 속해있는 병원을 이용할수 있기 때문에...
 
  저는 영어도 서툴지만 그래도 과감하게 당시에 LA 헐리우드 모병소에 있는 한인 모병관을 찾아가서 입대신청서를 작성하고 영어와 산수시험을 보고(토익시험 비슷함) 합격하여 81년도 1월에 동부 New Jersey 주에 있는 미군훈련소 Fort. Dix로 입대날자를 받아놓고 아내와 함께 12월에 한국으로 와서 아내는 처갓집에 남겨두고 저는 미국으로 돌아와서 미군 신병훈련소에 첫 번째 입대이자 논산훈련소에서 한국군 입대한것 까지는 두번째인 군대 이야기로 오늘은 이만.^^

아내의 무릎에 앉아있는 아들이 저의 인생행로를 바꾸어놓은 당시의 아들입니다. 벌써 42세가..^^